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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미식 여행가 안휴, 우리 바다 음식 기행

작성자 : 대표 관리자 작성일 : 2013-08-29 12:12:39 조회수 : 423

[중앙일보] 미식 여행가 안휴, 우리 바다 음식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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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 참기름 발라 말린 영암 어란, 캐비아 못잖은 명품이죠

 

 

영암 어란 명인인 김광자 할머니와 안휴 감독은 오랜 친구다. 어란은 얇게 썰어 먹는 게 정석이지만, 두툼한 걸 좋아하는 안 감독을 위해 김 할머니는 귀한 어란을 통 크게 썰어 냈다. [사진 중앙m&b]
영화감독, 미식가, 전방위 아티스트. 그를 수식하는 말들은 다양하다. 스무 살도 되기 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뉴욕대에서 영화를 공부해 영화 제작과 배급일을 20여 년간 해왔다. 미식가들의 마지막 성지라는 ‘엘 불리’를 비롯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속속들이 경험한 뒤 『세계의 별들을 맛보다』라는 책을 냈던 안휴(40) 감독이 이번엔 『바다와 섬의 만찬-안휴의 미식 기행』에서 20여 곳의 섬을 구석구석 돌며 우리 바다가 차려낸 식탁을 소개한다.

 전 세계를 누비며 한 끼에 40만~50만원을 호가하는 음식들을 두루 맛본 미식가 영화감독이라니…. ‘배부른 예술가’처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지낸 그가 한식을 논한다는 것도 쉽게 납득이 안 됐다. 그를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영화감독이라고 하는데 눈에 띄는 영화가 없다.

 “지금 음식 영화를 준비 중이다. 뉴욕대에서 영화를 공부한 뒤 벤처 엔터테인먼트사와 옥토버 필름(October Films) 등 뉴욕과 할리우드에서 영화 배급일을 했다. 바로 연출하기보다 할리우드 시스템을 먼저 아는 게 좋다고 판단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사진 공부도 하고 영화 제작에 관여하기도 하고 책도 내며 전방위 예술 공부를 한 셈이다.”

●배급일을 하면서 남들은 평생 먹어보지 못할 음식들을 경험했다. 재력가였나.

 “전혀. 20여 년간 유럽이나 제3세계의 예술영화를 주로 수입해 배급하는 게 일이었다. 출장 갈 때마다 한두 군데씩 맛집을 찾았고 그것이 쌓였다. 운이 좋았던 것은 인정한다. 9·11 사태가 일어나기 전인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은 호황이라 회사 법인카드에 한도가 없었으니까(웃음).”

 

고흥의 향토음식인 피굴은 석화를 여러 차례 끓여낸 뒤 차갑게 식힌 국물에 굴 알맹이를 넣어 먹는 요리다(사진 위). 울릉도의 산닭 백숙에 자연산 전복, 뿔소라, 홍합, 석화, 문어 등을 수북하게 쌓은 해계탕.

●먹어보면 맛있는 음식이라는 걸 느끼나. 음식 맛에 눈뜨게 된 계기가 있는지.

 “대학에 다니며 이탈리아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가 미식 인생의 시발점이다. 미국에서는 수업 시간과 과제에 쫓겨 겨우 피자 한 쪽으로 순식간에 때우는 게 일쑤였고 고작해야 스파게티나 페네, 링귀니와 라자냐 정도만 접했는데 이탈리아 학교 식당에선 처음 보는 파스타 모양만도 10여 가지에 소스도 매일 바뀌더라. 콜라·사이다 마시듯 레드와인과 로제·화이트와인을 마시던 것도 충격이었다. 매일 이렇게 먹다 보니 파스타와 소스를 바꿔 가면서 조합해보는 재미가 생기고 와인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는 스스로를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배낭여행에서 만난 와인 한 잔에 반해 보르도의 와인 아카데미 강의를 듣고, 멕시코 테킬라 마을을 물어물어 찾아가고,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에서 100년 묵은 식초를 맛보며 행복감에 젖었다고 했다. 그렇게 음식을 사랑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미식가로 불리고 책까지 내게 됐다며 웃었다.

●첫 책인 『세계의 별들을 맛보다』는 반응이 어땠나.

 “하루에 100여 통씩 편지가 왔다. 그중 상당수가 군인들이 보낸 것인데 요리에 대한 열정과 고민이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졌다. 2009년엔 취사병으로 복무하던 한 친구가 학비가 없는데 유학을 가고 싶다며 조언을 구하더라. 고민 끝에 제가 아는 몇몇 셰프와 레스토랑을 소개해줬다. 유명 셰프 밑에서 견습(스타지에·Stargier)을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으니까. 답장을 받고 전역 후 곧바로 스페인으로 떠났던 그 청년이 지금은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

●이번 책은 어떤 책인가.

 “우리 바다와 섬이 만들어낸 음식 얘기다. 울릉도 해계탕, 영암 어란, 제주의 따치회, 진도의 간재미무침 등 섬 구석구석을 돌며 음식들을 만났다.”

●왜 섬이었나. 뭍에도 맛있는 음식이 많은데.

 “바다와 섬에서 나오는 온갖 해산물을 좋아한다. 놀랍게도 굴이나 미역·전복·조개·생선 등 해산물들이 지역마다 다른 맛을 낸다. 염분이나 온도에 따라 특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환경이 급변해 오래전부터 누리던 해산물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도 섬을 찾은 이유다. 먹거리들을 잃기 전에 바다와 섬의 만찬을 책에 담아 보고 싶었다.”

●맛집 기행이 아니라 미식사전 수준이다.

 “사라지면 안 될 음식이 너무 많다. 특히 고흥의 향토음식인 ‘피굴’이 인상적이었다. 피굴은 석화를 껍데기째 깨끗하게 끓이고 찌꺼기를 걸러낸 뒤 여러 번 반복해서 끓인 국물을 식혀 굴 알맹이를 넣어 먹는 ‘차가운’ 굴요리다. 굴 맛이 최고조에 달하는 한겨울에만 먹는 별미로 고흥에선 해장국으로 인기다. 차갑지만 전혀 비리지 않아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바로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음식이다. 굴을 주로 차게 먹는 외국인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고. 아그사리젓갈도 예술이다. 새끼 병어로 만드는 젓갈인데 한 마리를 통째로 먹어도 거칠지 않다. 입에 넣는 순간 녹아내리니까! 대부분의 관광지 맛집은 외지인들이나 관광객들의 영향을 받아 지역색이 많이 줄었다. ‘짜다, 싱겁다, 비리다, 어쩌다’ 하니까 자꾸 눈치 보게 되고. 근데 아그사리젓갈은 현지색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더라.”

●영암 어란을 세계 3대 진미와 견줄 만하다고 했다.

 “소금에 절이는 일본 어란과 달리 영암 어란은 뻘을 흠뻑 먹고 자란 참숭어의 난소를 간장에 절인다. 이 어란을 그늘에 두고 하루에 두어 번씩 앞뒤를 돌려 가며 참기름을 발라줘 한 달 이상 말리면 윤기가 흐르고 고소한 어란이 만들어진다. 얇게 썰어 글렌피딕 15년산과 함께 먹으면 입안 가득 고소하고 짭쪼름한 맛이 감돈다. 세계 3대 진미인 캐비아나 트러플(송로버섯), 푸아그라와 견줘도 전혀 손색없는 명품이다.”

●술에 대한 애착도 남달라 보인다. 우리 음식과 양주를 많이 곁들였는데.

 “우리 음식과 양주의 조화도 아름답고, 우리 전통주와 외국 음식도 얼마든지 어우러질 수 있다. 담양의 댓잎술은 떡갈비와도 어울리지만 프랑스 음식들과도 잘 어울린다. 홍합밥과 샴페인도 마찬가지다. 홍합밥은 짭쪼름하면서도 참기름 때문에 고소한 맛이 난다. 밥의 당도도 있고 적당히 차져서 샴페인의 탄산과 궁합이 잘 맞는다. 캐비아나 굴을 샴페인과 먹는 것 이상이다. 제주의 따치돔을 두툼하고 큼직하게 썬 쫄깃한 따치회와 싱글 몰트 위스키로 달콤한 맛을 내는 글렌피딕도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그는 전통주에 대한 애착도 강했다. 와인 테이스팅만큼 흥미로운 게 전통주라며 진도 홍주, 담양 추성고을의 댓잎술, 고흥의 유자향주 자랑을 늘어놨다.

●전통주에 얽힌 사연이 있나.

 “영화 리서치를 위해 10년 전부터 한국에 올 때마다 전국의 전통주 명인들을 만나고 다녔다. 진도 홍주 무형문화재인 허화자 할머니도 그때 접한 인연이다. 홍주를 내리는 과정은 지난하다. 무형문화재인데도 변변한 시설이 없어 장작도 직접 패야 하고, 모든 일이 할머니 손을 거쳐야 한다. 고두밥 짓고 누룩과 섞어 발효시키고 물을 넣어 수차례 숙성시킨 뒤 불을 지펴 증류주를 받아낸다. 그 증류주를 잘게 썬 지초 뿌리가 담긴 삼베에 통과시키면 붉은빛을 띠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자리를 뜨는 법이 없다. 제가 처음 간 날도 새벽 4시부터 다음 날 오후 6시까지 식사도 거르시고 계속해서 불 조절을 하고 물을 길어다 채우셨다. 그렇게 하루 종일 내린 술이 작은 단지 한 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홍주 한 숟갈을 떠먹여 주시며 맛이 어떠냐고 물으시는데 아무 말도 못했다. 눈물이 핑 돌아 고개만 끄덕였다. 맛은 물론이고 사연 많은 이 술을 과연 누가 알아주고 있는지 만감이 교차했다.”

●그에 비해 전통주가 대접받지 못하는 것 같다.

 “서울까지 올라오지 못하는 전통주가 너무나 많다. 흑산도 사리마을에서 집집마다 만들어내는 약초 막걸리는 진하고 걸쭉하다. 팔도를 돌아봤지만 그토록 밀도 높은 맛은 처음이었으니까. 이런 술들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진달래로 담근 술인 두견주가 궁금해 장인을 만나러 갔는데 올 초에 돌아가셨더라. 입에서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전통주 제조가 점점 명맥이 끊겨 안타깝다.”

●한국인들이 모르는 한식 중 알리고 싶은 음식이 있는지.

 “당연히 사찰 음식이다. 한국의 사찰 음식은 수천 년간 독특하고 훌륭한 음식으로 진화했다. 사찰 음식을 먹는 건 수천 년의 지혜를 먹는 것과 같다. 전 세계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접할 수 있는 정갈한 나물들이나 발효 음식이 많아 세계화하기도 좋고. 경기도 양평에 계신 선재 스님이 단백질 보충을 위해 개발한 음식도 굉장하다. 단단한 두부를 간장에 담가 1년 동안 공기가 잘 통하는 장독에 묵혀놓으면 두부 조직 안에 간장이 깊게 스며들어 치즈 같은 맛이 난다. 이런 음식들을 모아서 내년에 제가 매년 기획해 온 미식축제인 ‘파인 다이닝 갈라 위크’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그동안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던 한식의 세계화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한식 세계화의 노하우가 있을까.

 “훌륭한 음식이 많은데 발상의 전환이 안 되고 있다. 예를 들면 같은 낙지라고 해도 외국인들은 산낙지에 거부감을 갖는다. 이럴 때 무안의 기절낙지를 사용하는 거다. 식탁에선 가만히 있고 먹을 때만 꿈틀거리기 때문에 먹기에 좋다. 이런 포인트들을 잘 잡아내는 게 중요하다.”

 한창 음식 얘기를 늘어놓던 그는 “자연이 준 식재료가 음식이 되어 나에게로 오기까지의 긴 여정과 인연에 늘 감사하며 먹는 게 나의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얼마 전 울릉도에서 야생 고추냉이(와사비)를 채취해본 적이 있어 그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도 했다. 맛깔나고 아름다운 음식이 내 입에 들어올 때까지의 인연과 노고를 생각하면 숙연해지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그는 천생 미식가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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